서명아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 디자이너
우리가 가진 의문들을 풀어내야 좀 더 상식적인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건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야 가능해 질 것 같아요.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학교에 있었어요.”


그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학생들끼리 정해놓은 규정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핸드폰을 일과시간에 쓰지 말자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날 제가 어딘가로 연락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핸드폰을 몰래 가지고 갔어요. 페이스북에서 새로운 소식들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얘기를 확인했어요. 제가 <안산소식>이라는 페이지를 팔로우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페이지에 ‘안산에 어떤 학교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났다는데 기도해달라’고, ‘페북지기의 동생도 있다’ 는 소식이 올라온 거예요. 보고 놀라서 뉴스를 검색해보았던 기억이 나요.


“세월호참사는 ‘한국 사회의 어디에서 일어난 일'이라기 보다는 가까운 내 주변의 일로 받아들여졌어요.”


저는 98년에 태어났어요. 세월호참사 학생들보다 한 살 어려요. 어렸을 때부터 안산에서 살았고, 친구들이 안산에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속보를 봤을 때, 그냥 가벼운 뉴스였는데도 그냥 뉴스가 아니라 큰 사건으로 느껴졌어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의 학생이라고 하니까 깜짝 놀라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무슨 일이야, 너희는 괜찮니, 이렇게. 저는 세월호참사에 대해 뉴스를 통해 듣기 보다는 안산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안산의 분위기를 전해들었거든요. 세월호에 타고 있었던 친한 친구는 없었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그냥 친구의 일이나 아는 사람의 일,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이 돼요. 한국 사회의 어디에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좀 더 가까운 일로 받아들여졌어요.



▲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의 노란 우산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저는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라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2015년 1월에 저와 함께 제천간디학교에 다니던 다섯 명의 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내가 세월호 우산(다른 곳에서 소량으로 제작해서 판매했던 우산)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살 수가 없네. 너희가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뭔가를 제작해 보는 게 어때?”라고 한 선생님이 제안해 주신 것이 시작이었어요.


우산을 만들기로 하고 제작을 시작했어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디자인을, 회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회계,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글을 썼어요. 우산이 아닌 다른 물건은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우산은 비가 올 때마다 펼쳐볼 수 밖에 없는 필수품이기도 하고, 우산을 펼친다는 행위 자체가 ‘기억을 펼치다'라는 의미와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들고다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물건이라는 점도 우산을 만들게 된 이유가 되었어요. 분명 방학이었는데, 프로젝트 때문에 방학이 아니었죠. 엄청 바빴거든요.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평상시에 하고 있던 친구들이었기에, 짧은 방학을 고민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후원을 받고 판매 후에 후원금을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200개 정도를 제작했는데 거의 다 판매가 되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2016년 1월에 다시 만나서 프로젝트를 이어나갔어요.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우산을 쓰며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카드뉴스나 웹자보를 만들기도 하고, 페이지에서 자체 릴레이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우연히 이 카드뉴스를 스크랩해주셨고, 그것이 퍼져나가면서 프로젝트가 커진 가장 큰 계기였어요.


프로젝트를 하다보니 우리가 느끼는 세월호를 하나의 책자로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또래들에게 그들이 느끼는 세월호참사는 어떤 느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림과 글로 표현해달라고 이야기했어요. 우리 주변에 있는 희생자들의 형제자매와 또래 (98-97년생) 몇몇에게 부탁을 했죠. 이렇게 받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컬러링북을 만들었어요. 컬러링북은 '기억을 펼치다'라는 프로젝트의 컨셉과도 맞았고, 그 책자를 보는 사람이 색칠을 하면서 그림과 글을 좀 더 꼼꼼히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우리의 프로젝트에 색깔을 입혀주는 하나의 '참여자'가 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서 6월에 4.16가족협의회에 수익금을 전달했고, ‘우리함께’와 분향소의 가족분들께 우산과 컬러링북을 전달했습니다.1654개의 우산이 판매되었어요.



▲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의 컬러링북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알리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인 것 같아요.”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라는 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어요. 분향소에 찾아가 유가족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죠. ‘결국에는 유가족들만 남았다. 인양만 하더라도 감시해야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고, 그 외의 일도 다 하려니까 너무 일이 많다'는 말을 하셨어요. 얼마가 후원되고 몇 명이 우산을 샀는지를 떠나서,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이 지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 힘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 프로젝트는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하나하나가 작은 힘들을 함께 보태다보면 유가족들도 혼자가 아닐 것이고, 이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 나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참사는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사건"


세월호참사 이후 제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처음으로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에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는 거예요. 이 사건 전까지는 저랑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있으면 ‘아, 그렇구나’ 정도로 넘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세월호참사 자체나 그 유가족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박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뭔가 찾아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곳이라는 걸 사람들이 인지하게 된 것'이에요. 저도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거든요. 내가 구조를 요청해도, 그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내가 도움을 받지 못할 수 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고, 여전히 제 안에 이 사건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있어요.


“우리가 가진 의문들을 풀어내야  좀 더 상식적인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건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야 가능해 질 것 같아요.”


세월호참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저 말고도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건지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문들을 풀어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사회로 변화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되려면 민간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특별법 같은 정책의 힘이 필요할 것 같아요. 또 이것은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계속 관심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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